고려인삼의 유래
4500∼5000년전 민간의(民間醫)에 의해 고려인삼을 약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영약, 선약, 불로초 등으로 불리워지면서 삼국시대에 중국까지 전파됨.
중국의 후한헌제 건안년대(서기 196∼220)의 장중경의 저서 "상한론"과 그후 "명의별록", "신농본초경" 등에 인삼이 귀중한 약재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음.
인삼에 얽힌 강처사 전설 (금산의 유래)
남이면 성곡리 개안이 마을은 인삼의 눈을 뜨게 한 곳이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. 지금부터 약 1,500여년 전에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.
효자인 아들은 진악산에 있는 관음굴에서 정성을 들여 모친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.
그러던 어느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"관음불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뿌리를 달여드려라.
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."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.
강선비는 꿈이 하도 이상하여 꿈속에서 본 암벽을 찾아가니 과연 그런 풀이 있어 뿌리를 캐어 어머니께 달여드렸더니 모친의 병은 완쾌되었고,
그 씨앗을 남이면 성곡리 개안이 마을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하니 이것이 우리고장에서 처음으로 인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게 된 것이라고 하며,
인삼의 모양이 마치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人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.